2010년 12월 10일 금요일

인간과 동물, 식물.

호랑이, 원숭이, 코끼리.
개, 고양이.
소, 돼지, 닭.
고등어, 참치, 오징어.
굴, 조개, 게.
달걀, 명란, 날치알.
배추, 파, 버섯.
우유, 치즈.

이 것들에 줄을 세우는건 괜찮은 것 입니까? 

우리는 이미 줄을 세웠다. 굵고 지워지지 않는 줄이 그어져 있다.

인간, 그 다음 동물 그리고 식물.
괴롭히는 것과 괴롭다는 것, 죽이는 것과 죽임을 당한다는 것.
인간이 판단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 힘이 있으므로 - 인간이 판단 할 수 밖에 없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의 수만큼 만은 판단들이 있고, 그래서 정답 없이, 끝이 없이 이야기 할수 밖에 없는,
그렇구나 하고 말아야 하는 이야기.

2010년 12월 8일 수요일

아빠의 문자

아침에 한국 핸드폰을 들여다봤는데, 아빠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아빠는 나에게 힘들어도 잘하라며 용돈 부쳐줄테니 계좌를 알려달라고 보냈다.

아빠는 사실 나에게 그리 좋은 아빠가 되어 주지 못했었다. 내가 어릴 때 보증 문제로 부도를 낸 이후로 아빠는 집안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아마도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만회하려는 마음이 그 다음에 아빠가 벌인 일들도 망친 것 같다. 점점 우리들은 아빠에게 무엇도 기대하지 않게 되었지만 아빠는 다음 성공을 장담하고는 했고, 언제나 처럼 날짜는 항상 미루어 지거나 없었던 일이 되고는 했다. 언제나 말수가 적었던 아빠는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빠가 내게 자기가 먼저 용돈을 주겠노라 말 한것은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처음이다. 문자를 보고는 철없이 좋구나 라고만 생각했는데 갑자기 안하던 말을 하는 아빠가 왠지 안쓰럽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몇해 전인가, 동생이 아빠에게 안하무인 격의 행동을 하고 난 후, 아빠에게 애가 철이 없어 그러니 신경쓰지 말라고 문자를 보냈었다. 그때 아빠는 "아빠가 미안하다" 라고 답했다. 아빠의 사랑은 세 딸들이 무슨 과를 다니는지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려올 때.

자신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사랑에 빠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게는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인것 같다. 맥박의 요동이 온 몸을 뒤흔들면 그저 그 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거나 그 사실을 잊으려고 노력하거나 하는 수 밖에는 없다.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정말 없었는지 - 장기하

고운이랑 장기하의 정말 없었는지를 듣다가, 내가 듣고 느낀 걸 설명해 주려고 했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 나는 그 노래가 단편 소설 같다고 말했다. 단편 영화 같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단편 영화는 내가 공간을 상상하게 만들지 않으니까 나에게 노래는 소설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소설도 노래도 나에게는 이야기이고, 그것들은 시각적인 무언가를 상상하게 만든다.

'정말 없었는지'를 들으면, 나는 지하철역과 작은 시장을 지나 좁은 골목길로 이어질 관악의 동네가 그려진다. 가본 적 없는 녹두나 봉천의 어딘가 언덕 위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과 복잡한 시장통에서 지나쳐간 그애를 상상한다. 분명 이 동네 어딘가에 살고 있을, 언젠가 스쳐지난 적이 있을 그 아이를 떠올리고, 눈이 서로 마주치고, 상대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 그런 걸 상상하게 된다. 가사속의 눈물도 옛날도 행복과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데, 그 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내가 보인다.

2010년 11월 21일 일요일

고운이는 아이폰을 잃어버렸다.

나보다도 더 칠칠치 못한, 덜렁대는, 그런데도 당당하고 더 밝은 애가 있어서 놀랍다.

작년 가을의 운 좋게 가게된 스쿨에서 - 나고야도 가고 케크도 가는 겸사겸사의 행사라서 갈 수 있었다 - 만난 그 아이는 재미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친해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그 스쿨에서 이미 그 애가 나와 비슷한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비슷하지 않은, 조금의 다른 점 때문에 우리는 친해지기 어려울거라고 생각했다.
함께 보낸 시간은 2주의 스쿨, 하룻밤의 관악, 그리고 2달의 나고야. 이제 우리는 함께 술도 마시고 - 당연히! - 요리도 하고 노래도 하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함께 연주도 할 것이다. 그 애는 아이폰을 잃어버렸지만 혼자 즐겁게 지내며 바쁘고, 나는 아이폰을 들고 외로워하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지만, 아마 내일도 우리는 함께 무언가를 할 것이다.
한줄로 쓰자면 좋은 친구가 생겼다.

Daft Punk's Electroma


히다카가, 친구가 かっこいい한 뮤직 비디오를 알려줬다면서 다프트 펑크의 뮤비를 보여줬다. 그 영상은 Steam Machine 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 였는데 줄거리가 "새하얀 연구소 혹은 병원 같은 곳에서 헬멧 머리를 한 로봇 둘이 사람 얼굴을 붙인다" 라는 것 뿐이었다. 노래도 영상의 분위기도 좋았지만 뭔가 모자란 듯 한 느낌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씨리즈 중의 일부였고 또 그 씨리즈는 사실 한 편의 영화였다. Daft Punk's Electroma. (youtube에서 electroma로 검색하면 part 1 부터 7까지 나뉘어 올려져 있다.)
이 영화의 특징은 우선 대사가 없다는 것이다. 거의 소리도 만들지 않는다. 그러다가 중간중간 갑자기 배경 음악이 깔리기도 한다. 그러나 '뭐야 이건'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음악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또 같은 씬이 오래 계속 된다. 예를 들어 차를 타고 간다고 하면, 줄곧 같은 배경을 달리는 차안의 모습, 밖에서 차를 본 모습 따위의 비슷한 몇개의 앵글이 한 5분정도 계속된다. 로봇들이 사막을 걸어가는 장면은 한 10분은 되었던 듯하다. 그런식이라서 2시간 정도의 영화지만 짧게 만들면 10분이면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너무 지겨워서 막 건너 뛰면서 봤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두 로봇이 차를 타고 간다. 마을이 보였다. 주민은 모두 같은 스타일의 헬멧 쓴 로봇들이다. 두 로봇은 연구소 같은 곳에서 사람 얼굴을 만들어 붙였다. 길에 나왔더니 모두 신기하게 쳐다본다. 그런데 날이 너무 더워서 얼굴이 녹아내렸다. 주민들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두 그들을 뒤쫓는다. 둘은 공중 화장실로 도망쳐서 얼굴을 뜯어낸다. 한 로봇은 조금 망설였지만 다른 로봇이 설득한다. 그리고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사막을 걷고 땅이 갈라진 벌판을 걷는다. 얼굴을 뜯어내는 걸 망설였던 로봇이 멈춰 서더니 옷을 벗고 등 뒤의 스위치를 켜달라고 부탁한다. 스위치를 켜니,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그 로봇은 폭발한다. 남은 로봇이 잔해를 모아 무덤을 만들어 준다. 남은 로봇은 다시 걷는다. 어딘가에 멈춰서서 결심한 듯 꿇어않아 등뒤의 스위치를 켜려고 한다. 하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헬멧을 벗으니 회로로 된 얼굴이 나온다. 헬멧을 바닥에 내리 쳐서 부순다. 헬멧의 조각으로 햇빛을 이용해 손을 태운다. 이윽고 온 몸이 불꽃에 휩싸인다. 그런 채로 걷는다. 끝.

마지막 장면인, 불이 붙은 채로 암흑 속을 걸어가는 로봇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짧고, 대사도 없기 때문에 사실 정보를 많이 얻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로봇이 지금 얼마나 슬퍼하고 있는지, 그 장면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지만 아쉬웠던 것들. 전체적으로, 영화에 대화를 넣지 않은 것은 재미있는 시도 같지만 (우리는 이미 무성영화의 시대를 지나쳐 왔지만), 어찌됐든 소리의 처리가 이상하다. 배경 음악이 실제로 영화에 삽입되어 있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유튜브 버전은 확실히 이상하다.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같은 장면은 계속 보여주는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 10분짜리를 2시간으로 만들면 영화라고 할수 있을 까봐? 그런건 아니겠지. 그렇지만 정말로 지겨웠다.


Daft Punk's Electroma 위키 페이지

2010년 11월 15일 월요일

어느새

이상하다, 언제부터 연구가 내게 지겨운 일이 되버렸는지. 가끔은 일하느라 놀러 나가는게 귀찮을 때도 있었는데, 한눈은 팔아도 싫어하지는 않았는데. 안되겠다. 되돌려 놔야겠다.

제목은 東京飄然

東京(とうきょう) : 도쿄, 동경
飄然(ひょうぜん) : 만연

만연은 한국에서 잘 쓰지 않는 단어다. 일본에서도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몇명 물어봤는데 잘 몰랐다.) 한국어 번역은 동경산책으로 되어 있다. 만연을 산책으로 번역한 것은 마케팅을 위해서는 적절했지만 내용에 대해서는 충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쓰잘데기 없고 무의미한 농담과 밑도 끝도 없는 몽상으로 가득 찬 책인데 산책이라고 하면 뭔가 산뜻하고 발랄한 느낌이다. 사실 만연도 어울리는 제목이 아니지만, 한 편으로 반어법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근처에 사는 얄미운 케이세이 군이 그건 산책 아니냐며 물었을 때 마치다 코우가 아니라고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은 알지만.. 산책으로 번역 할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스스로 좀더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의도라던가 나는 어떤 자세로 해석하고 옮겨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들고양이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청춘은 : 青春は
들고양이 : 野良猫 (のらねこ)
처럼 : ように
재빠르게 : 素早く (すばやく)
지나가고 : 過ぎ去って(すぎさって)、過ぎ行いて? 過ぎ去り?
그 : あの?その?
그림자는 : 影(かげ)は
오래도록 : 長く?久しく?
영혼 : 魂(たましい)?霊魂(れいこん)?
에 : へ?に?
그늘를 : 陰を(かげ)
드리운다. : 垂らす(たらす)?

그림자와 그늘의 발음이 같다는게 좀 우스운 느낌으로 만들지 않을까, 아니면 오히려 맞춘듯 한 느낌을 줄까 잘 모르겠다.

青春は野良猫ように素早く過ぎ去り、
その影は長く霊魂に陰を垂らす。

제목은 청춘의 문장들

청춘 : 青春
의 : の
문장 : 文章
들 : 達

青春の文章達

이대로 괜찮은가? 제대로 느낌이 전달 될 지 확신이 없다.
達는 전에 무생물에 잘 쓰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우리도 잘 쓰지는 않는다. 한국어든 일본어든, 내 생각에는 주어로 쓰일 때 '들' 혹은 達를 쓰는게 아닌가 싶다. 한국어나 일본어는 주어가 보통 사람이니까 무생물에 잘 쓰지 않는다고 설명을 한 것 아닐까.

2010년 11월 12일 금요일

Instagram


요즘 내가 자주 이용하는, 혹은 확인하는 어플리케이션이다. 트위터의 사진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웹페이지로는 볼 수 없고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고 알고 있다. 팔로워가 늘고 like를 받으면 기분이 좋다.

사진은 정사각형으로만 업로드 가능하고 바로 찍어 올리기와 기존 사진 올리기가 가능하다. 기본 제공되는 필터가 꽤 독특하고 느낌이 좋다. 사진을 올릴 때 트위터, 페이스북, flicker등과 연계 가능하다. 

Popular라는 탭에서 많은 사람들이 like 해준 사진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때 Popular에 올라온 유저 중에 사진을 좀 보고 취향이 맞는 사람부터 팔로우 했다. 그리고 twitter 친구도 언제든지 친구로 등록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누군가 이미 잘 설명해 주었다.
(이 곳을 참고)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는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확실히 더 잘 찍는다. 있는 그대로를 담지만 처음과 다르다. 필름도 디지털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이유를 알고 싶지만 꼭 알아야 할 이유가 또 있는가도 싶다. 

學而不思卽罔 思而不學卽殆

學而不思卽罔 思而不學卽殆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

고사성어 이야기하다 히다카가 써준 공자의 논어, 위정편 15장.

나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기만 한다. 배우되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다른 것을 상상하고, 생각하되 그것에 대해 배우지 않고 다른 것을 배우고 있다. 이런 우스운 꼴이라니.

2010년 11월 10일 수요일

한낮에

햇살 좋은 날이든 구름이 잔뜩 낀 바람부는 날이든, 나는 여기서 갈 곳이 없다. 갈 곳이 있어도 갈 수가 없다. 몇시부터 몇시까지 어느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지킨지 꽤 되다보니, 마음내킬 때 나갈 수 없다는게 나를 조인다.

2010년 11월 9일 화요일

생각이 새

자꾸 생각의 끈을 놓치곤 한다. 머리는 계속 돌고 있는데 뭐가 중요한 것인지를 잃어버린 채 헤매고 있다. 벽에 계속 머리를 받으면서도 앞이 막힌 줄 모르는 길에서 산 싸구려 장난감 자동차처럼 무모하고 쓸모없이. 어쩌면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의 좌표 - 홍세화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가 이 책의 헤드 카피 였다 (헤드카피가 우리말로 뭐지?). 바람과는 다르게 "어떻게" 에 중점을 둔 책은 아니었고 생각의 좌표가 되었으면 하는 것 들을 써 놓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를 설명하는 책은 과학서적일텐데 당치않은 기대를 했다. (그렇지만 아무튼 좋은 헤드 카피는 아니었다. 혹하게 만드는 역할에만 충실했다.) 오랜만에 홍세화씨 책을 읽는 거라 내용은 만족스러웠다. 뭐 만날 하는 그 얘기라고도 생각 할 수 있겠지만 잘 정리해 놓고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마지막 장은 홍세화씨 자신의 고백적인 이야기로, 그가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왔는지를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2010년 11월 8일 월요일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 황석영

소설가 황석영의 서재는 일터이다.

마음에 드는 책들 뿐이다. 다 읽어 보고 싶다. 항상 욕심 뿐이지만.

우선 순위를 꼽자면 사회과학 서적류. 왜 일까 생각해보니 별로 그쪽 책을 추천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인것 같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의 이진원씨가 지난 토요일 돌아가셨다. 나는 그의 노래는 '주성치와 함께라면' 밖에 알지 못하지만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란 이름은 그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한번 들으면 쉽게 잊지 못하는 이름이지 않은가? 인디씬에서는 아마도 유명한 이름이리라. 그렇지만 여느 인디 음악인이 그렇듯 밥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가 딱히 생활고와는 상관없이 사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은 음악인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댓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었다.
물론 음악을 해서 먹고 살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씨디를 더 많이 사달라는 것이 아니고, 더 좋아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지금 팔리고 있는 음원에 대한 수익 분배를 좀더 평등하게 - 중간 업자가 대부분을 가져가는 요상한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 해달라는 것이다.
경제학은 사회학 중 가장 관심이 가는 분야이다. 모두들 돈돈돈 하고, 나도 돈돈돈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나에게 수수께끼 같은 건, 어째서 대체 누군가가 엄청난 돈을 긁어 모으는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가다. 나는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나의 지적능력은 산소통을 매고 물질을 하면 나머지는 뭐 먹고 사느냐고 대답한 해녀 할머니와 같은 수준인가보다.

일요일, 저녁

어제는 왠지 피곤해 져서 12시 반쯤 졸려져서, 얼른 자고 일찍 일어나서 일해야지- 하며 잤는데 12시 넘어서 일어났다. 뭐라도 해볼까 망설이는 동안 시간은 흘러 3시, 4시, 5시. 그런데 고운이는 영 연락이 안되고 5시 반이 지났는데 히다카도 연락이 없어서 6시 쯤 고운이 걱정을 하면서 발로로 갔는데 고운이가 앞에 서있었다. 내 걱정과는 상관없이 고운이도 하루 종일 자버렸다고 했다. 얼마 있다 히다카는 바이트가 끝났다고 전화가 와서 장은 우리끼리 보고 모토야마에서 만나서 고운이네로 갔다. 해물파전, 김치전, 호박전, 버섯전, 오뎅을 말 그대로 이빠이 먹고 담배타임.  


이후에 헤이와 공원 (平和公園)에 산책을 갔다. 되게 멀리 있을거라고 무작정 생각했는데 고운이네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호수도 있고 정자도 있고 잔디도 넓고 한밤중이라 사람도 아무도 없어서 좋았다. 낮에 가도 좋을까? 주말에 가도 좋을까? 돌아와서는 올라가 가져온 초코롤을 먹으면서 히다카군의 드럼 앤 베이스 추천이 한 시간여 이루어져서 1시에 마쳤다. 아, 마지막은 나의 세월이 가면 연주였다. (笑)

처음에는 히다카군이 불편해 하지 않을까 걱정됐는데, 전 만드는 것도 잘 도와주고 마침 쥬니치와 롯데의 일본시리즈 8차전이 방송되고 있어서 보면서 야구 얘기도 하고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쉴새 없이 먹어대서 딱히 어색할 틈도 없었다. 다음에도 또 같이 놀수 있을까?

2010년 11월 6일 토요일

다시마끼타마고 (だし巻き卵)

겨울이 되니 로손에서 오뎅을 판다. 로손에는 다시마끼 타마고가 오뎅 메뉴로 있다. 혼자서도 잘 먹지만 친구네 놀러가면 사케에 오뎅이 주로 상에 오르는데 친구 집 근처의 세븐일레븐에서는 팔지 않는다. 해서 스스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누군가 레시피를 올려 놓았다.


이걸 보고 에이온(AEON)에 가서 타마고야끼 후라이팬, 가는체, 기름솔과 다시, 맛술, 설탕 소금, 간장, 계란 사는데 3천엔 가까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마끼타마고용으로 만든 다시국물도 파는 것을 발견! 그렇지만 비싸서 참고용으로만 사봤다. 달걀 6개용 15ml 3개에 99엔이었다. 

처음으로 만든 다시마끼 타마고, 참고용 만들어진 다시를 넣고 계란 두개를 사용했다. 나이테처럼 진한 노란색이 보이는 이유는 계란이 다 익지 않았는데 말아서 생긴 것 같다. 그리고 참고용으로 사온 다시국물은 위의 레시피보다 더 단맛이 강해서 내 나름대로 만들어 보았다. 



내가 만든건 다시 4T, 맛술 1.2(?)T, 설탕 1.5T, 간장0.5t, 소금 0.5t. 설탕이 잘 안 녹아서 다시를 데워서 설탕을 녹였다. 진짜 다시 마끼 타마고는 내일!



ローソンしかないので作った巻き卵

계절어는 巻き卵 (누구 마음대로?)
음수율이 맞는지 알 수 없다. 



새벽 5시의 귀가

고운이네 집을 나서서 이슬 맞은 자전거 안장을 닦고 어두운 거리를 자전거로 달리며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도 친구를 만들 수 있다니 좋다 라던가, 항상 이렇게 신세를 져도 되는걸까 라던가, 공원이 좋다는 것과 바다가 좋다는 것과 여행이 좋다는 것에서 뭐가 같고 뭐가 다를까 등에 대해서. 돌아와 씻고 누우려니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밝아졌다. 우리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지금 내가 대학시절의 나를 되돌아 보는 것과는 다르게 훗날의 나에게 보였으면 좋겠다.

2010년 11월 4일 목요일

디제잉

디제잉이라는 건 남이 만들어 놓은 밥상에 수저만 얹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수저를 얹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술이라는 것이 단지 쉽고 어려움의 기준으로만 판단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자꾸 까먹는 나도 문제다.
듣기에 좋은데 어쩌랴.

블로그

친구의 블로그를 보면서 부러웠다. 자신을 담아낼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와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그는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나를 숨기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들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 또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블로그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망설이기만 하다니 바보같다.
나도 이제 (아이폰에 달린) 디카가 있으니 적극적인 블로거가 한번 되어 보겠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하지 못한 일이 너무 많다. 이제는 망설이지 않으리.

2010년 11월 3일 수요일

소년들

그 소년들은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네들의 마음은 대체 얼마나 많이 자라버린 걸까. 변해버린 것 만은 아니기를. 아직도 똑같은 자리만 맴도는 나는 그들이 떠나가는 것이 슬펐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던 듯 하다. 그들을 붙잡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 붙잡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 나도 조금은 어른스러워 졌다는 뜻일까.

2010년 11월 1일 월요일

유치함

말하고 나니 후련한 듯도 했다. 가슴 부근이 조금 아린 것 정도야 모르는 척 넘어 갈 수 있다. 가끔 상처가 쓰려도 스스로 낸 상처에 누군가를 탓할 여지는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할 뿐이다. 아무런 가능성도 갖지 못하게 되는게 알수 없어 방황하는 것 보다 마음 편하다 생각하는 나를, 친구는 유치하다고 했다.

2010년 10월 24일 일요일

집에 돌아왔다.

짧았지만 재밌고 유익한 곳에 다녀왔다. 사람들와 마음껏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집에 온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집에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2010년 10월 19일 화요일

술이라는 게

취하면, 사람을 몽롱하게 만들어,
한편으로 이렇게 내 뇌가 전부 굳어져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하지만 이미 걱정과는 딴판으로 계속 마시고 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