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백 사이에 놓인 인물과 풍경.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걷는 눈 내리는 겨울. 충무로인지 인사동인지 북촌인지의 어딘가의 골목. 술에 취해 헤어진 여자 집에서 자고 나오면서 미안하다며 다시는 안오겠다고 말하는 남자. 나는 다르지만 비슷한 사람을 떠올린다. 다르지만 비슷한 나를 생각한다.
나는 주인공을 싫어하고 만다. 저런 뻔뻔한 자식. 하지만 그래요, 알았어요 하고 다시 문자를 보내는 여자도 싫다. 키스 두번에 오빠가 생기는 여자는 더 싫다. 오빠라고 불리는 남자가 싫은지 오빠라고 부르는 여자가 싫은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 둘다 싫은 거겠지. 세상 어딘가, 라고 말할 것도 없이 저 주인공이 서있는 저 곳에는 저런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래서? 세상일이 모두가 우연이라는 이론을 주장하는 주인공을 우습게 보지만 그런 사람도 있는 것이지. 왜 그러는 것인지 정확하게는 알수 없지만, 아니 알고 싶지도 않지만 아무튼 그런 사람도 있는 것이지 하고 나는 인정(認定)이라는 이름의 무시를 한다.
나는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아름다움도 좋아한다. 결국 아름다운 이야기를 좋아하나보다. 유려한 문장, 화려하기 보다는 소박하게 마음을 끄는 문장. 소설에서 셋이 술을 마시다 보람씨가 외로움을 고백하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외롭기 때문일지 모른다.
나는 자꾸만 내가 왜 이 영화를 봐야 되는지, 보고 뭘 해야하는지, 오늘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나는 왜 살아야 하는 건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왜 지금 죽으면 안되는지 모르겠다. 계속 모르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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