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한참 잠을 이루지 못한건 막내의 대학 입시 걱정때문이었다.
딸셋에 아들하나, 막내둥이이지만 일하느라 바쁜 부모님과 나이 터울이 큰 누나들은 제대로 보살펴 줄 수 없었고, 게임과 텔레비젼과 친구하고 혼자 라면 끓여먹기를 일찍 배운 아이.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고, 무언가 열중해서 한 적도 없는 어쩌면 대한민국 표준 청소년.
소위 SKY라고 불리는 대학들으로 진학한 누나들은 모의고사 3-5 등급 맞아오는 아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더 열심히 하지 않는지, 하고 싶은게 있는 것도 아니고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닌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깨닫겠지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옳은'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결국에 도달할 어쩌면 도달해야할 결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수시 원서 접수 마지막 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학교에 뭘 하는 과인지도 모르는 채 원서를 적어 넣고 덜컥 붙어서는 "붙은데가 거기 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 라며 다니겠다는 아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은 계속해서 잔소리로 가득 찼다. 너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지만 평범하게 사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니. 사람들이 대학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아니.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회사원으로 너는 죽기전에 집이나 마련할 수 있겠니. 물려 받을 재산 하나 없는 우리 집인데. 가진것도 잘난 것도 하나 없이 학벌도 없으면 뭘 내세울 수 있겠니.
…
그리고 나는 그런식으로 살면 너는 이렇게 될거야, 하고 예를 들고 싶었다. 같은 대학 출신 친구들은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아는 곳에 취직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했다. 유학을 간 아이도 있고 의전, 혹은 로스쿨로 가기도 했다. 그것도 아니면 행정고시, 붙은 아이도 아직 준비중인 아이도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 동창들을 볼까. 4년제 대학에 진학한건 나를 포함에서 셋인가 넷. 그리고 그 수만큼의 친구들은 대학에 가지 않았다. 2년제를 나온 아이도 있는 것 같았고, 자세히 묻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다. 물론 그 애들 월급이 대학 동기들보다 더 적을 것이다. 어쩌면 일하는 시간도 더 길지 모른다. 더 힘들게 일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정하다. 그러면 그 애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단정 지을수 있을까. 우리는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더 편하게 일하기 위해 사는 걸까. 아니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일까. 더 많이 벌지 않아도, 더 편하지 않아도 행복하다면?
나를 돌아 본다. 나는 무엇을 가졌다고 그애에게 잔소리를 해대는지. 이제 곧 서른. 가진 것이라고는 국내 대학 입자물리학 석사 학위. 모은 돈도 없고 잘난 외모나 성실함, 리더쉽 따위도 없다. 미래를 내다 보아도 잘해봐야 교수(라고 썼지만 꿈에나 될수 있으려나), 못하면 평생 시간제 강사, 계약직 연구원으로 살겠지. 한국에서 산다면 교수가 되지 않는한 편하게 일하지도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한다.
결국 나는 '이게 다 너의 행복을 위해서야'라고 거짓으로 그 애를 떠밀 수가 없다. 내가 못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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